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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 16 | Update : 2018-01-18 | Time :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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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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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 # 일본식민지배 # 감옥 # 서대문형무소 # 변상철 # 역사 # 지금여기에

근대화의 격랑 속에서 제국주의의 매서운 바람은 서대문형무소의 탄생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도성의 중심에 세워진 배경에는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콘텐츠 정보
10분 13초
2018년 01월 18일
지금 여기에서 역사와 만나다_서대문형무소

강사 소개

  • 변상철

    저는 국가폭력희생자의 고통을 헤쳐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조작간첩 피해자들, 양심수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 현충원, 일본군 관사 등 역사의 흐름 한가운데 서있는 의미있는 유적을 찾아 그곳을 시민들에게 안내하는 일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자세히보기
    주요 경력 및 저서
    ◆ 일본군위안부역사관 연구원
    ◆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 조사관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
    ◆ 성공회대학교민주자료관 연구원(현)
    ◆ 마포구 혁신교육지구 지역위원(현)
    ◆ 지금여기에 사무국장(현)

여기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보실 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다른 역사적인 장소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곳은 멀리 김구 선생님, 여운영 선생님부터 가깝게는 김대중 대통령님까지 이곳을 거쳐 갔던 우리에게는 조금 특별한 의미의 장소입니다. 이곳은 1908년에 지어져서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나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셨던 민주투사들이 이곳에서 많은 고초를 겪었던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뒤에 보이는 이 건물은 보안과 청사 건물로서 이곳을 서대문형무소 전체를 관장하고 있던 소장님 이하 간수들이 행정업무를 보던 곳이고요. 이 밑에 지하는 여기에 투옥됐던 많은 독립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민주투사들을 고문하고 또 갖은 가혹행위를 자행했던 고통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자, 이제 안으로 들어가서 서대문형무소가 언제, 무슨 이유로 만들어졌는지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1908, 1987. 이 말과 숫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보통 ‘서대문형무소’ 하면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위해서 애쓰시다가 들어오신 분들이 이곳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요.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이라는 이 말에서 보듯이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해방 이후, 1945년부터 1987년까지 30년간 더 운영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자유’라는 것은 일제강점기 때 잃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애쓰면서 찾으려고 했던 이 자유와 ‘평화’라고 하는 것은 긴 독재를 경험했던 우리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 애썼던 그 평화의 이야기들을 담은 메시지입니다.

1945년 이후에 긴 독재정권을 경험했던 우리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을 했던 분들이 이곳에 수감되어 긴 옥고를 치르셨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는 이 서대문형무소가 일제강점기 때 사용되었던 것뿐만 아니라 1945년 이후에 30년간 더 운영되었던, 그래서 자유, 평화를 이곳에서 느끼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러분들이 기억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800년도에는 강한 나라가 힘과 경제력으로 다 힘이 약한 민족이나 나라를 침략하는 이런 제국주의의 침략이 광풍처럼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조선 마찬가지였는데요. 미국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이라든가 아니면 프랑스의 병인양요와 같은 계속된 제국주의의 침탈시도가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이 그림에서 보이듯이 ‘운요호’라고 하는 군함을 가지고 강화도에 농성하게 되는데요. 이 ‘운요호 사건’을 통해서 ‘강화도조약’이라고 하는 우리로서는 최초의 근대적인 조약인 이 ‘강화도조약’을 맺게 됩니다. ‘강화도조약’은 굉장한 불평등조약이었는데요. 특히 10조에서 ‘치외법권’이라고 하는 즉, 일본사람이 조선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우리가 처벌하지 못하고 일본법에 따라서 일본인들이 처벌하게 되는 아주 불평등한 이런 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런 ‘강화도조약’을 통해서 조선에 식민지 지배에 첫발을 뗀 일본은 뒤에 청일전쟁, 을미사변, 러일전쟁을 거쳐서 한반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특히 1905년에 ‘을사늑약’이라고 하는 것을 맺게 되는데요. 이 불평등한 조약은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가는 즉, 조선의 외교권이 일본에 의해서 행사되는 이런 불평등한 조약이 맺어지게 됩니다.

이 불평등한 외교권의 박탈로 인해서 고종은 이런 불평등한 상황을 세계만방에 이야기하기 위해서 헤이그에 밀사를 보내게 되는데요. 1907년 헤이그의 밀사 특약이 빌미가 되어서 고종이 폐위되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고종이 폐위가 되는 이런 상황에서 전국에 항일운동을 펼치고 있었고 유생들, 의병들이 모두 모여서 고종 폐위를 막기 위해서 의병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게 됩니다.

이때 일본은 이런 의병들의 반발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마구잡이로 학살을 하게 되는데요. 이런 학살의 현장에 서구 열강들이 일본을 굉장히 많이 비난합니다. “아니, 근대국가라고 하는 너희들이 어떻게 법적 절차도 없이 사람들을 그렇게 잡아다가 가두고 죽이고 할 수 있느냐?” 이런 항의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이에 일본은 근대국가라고 하는 그런 허울 좋은, 형식적인 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랴부랴 형법제도와 감옥제도를 갖추게 되고 이곳 현저동 101번지에 서대문형무소를 건립하게 됩니다.

현저동 101번지. 이 현저동 101번지는 서대문형무소가 있는 곳의 주소입니다. 여러분들 혹시 오시다가 커다란 독립문을 보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이 독립문이 있는 이 위치가 바로 이 현저동 101번지입니다.

그러면 이 현저동 101번지에 왜 서대문형무소가 지어졌는지를 좀 설명해 드릴 텐데요. 먼저 아까 말씀 드린 이 독립문. 이 독립문이 있던 원래의 위치에는 이 독립문이 아닌 이 아래에 영은문이라고 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 영은문이 청나라의 사신이 조선으로 들어와서 거쳐 가던 문이었어요. 다시 말해서 "청산의 사신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고 하는 의미로 이 영은문을 지었고요. 이 영은문 옆에는 모화관이라고 해서 이 사신들이 황궁 왕실로 들어가기 전에 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머물러서 쉴 수 있었던 사신을 위한 숙소를 마련해놓았었습니다. 그런데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아닌 일본이 승리하면서 일본은 이 영은문 자리를 부수고 이 독립문을 그 자리에 짓도록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독립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바꿔 말하면 이 독립문은 실제 조선이 독립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조선의 주인이 청에서 일본으로 바뀌었다고 하는 의미의 독립문으로 이해하시는 될 것 같습니다.

이 독립문이 지어진 이 자리, 즉 청나라의 사신이 들어오는 이 자리를 ‘의주로1번길’이라고 해서 매우 많은 사람들이 지나 다니던 길입니다. 여기 사진에서 보면 이 독립문 아래에 많은 나무를 이렇게 싣고 가는 장면들 볼 수가 있는데요. 여기에는 왕실 안에서 쓰는 그 재목인 화목이 이 나무를 매우 많이 싣고 와서 파는 시장이 형성되어있었어요. 즉 영천시장이라고 해서 나중에 여러분들이 서대문형무소를 나가서 둘러보시면 매우 큰 시장이 하나 있을 텐데요. 그것이 바로 예전부터 있던 이 영천시장입니다. 이 영천시장 안에 굉장히 큰 시장이 형성되어있어서 많은 사람이 이렇게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요. 이 시장, 그리고 이 의주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이 길 앞에 서대문형무소가 지어진 것이죠.

여러분들 혹시 여러분들 집 앞에 감옥이 들어온다. 아마 찬성하실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이렇게 번성한 길 대로변에 서대문형무소가 지어졌는지 그것은 일본이 ‘이제 조선은 일본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잘못하거나 너희들이 반발하면 모두 다 잡아올 수 있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위치에 이 서대문형무소를 지어놓은 것이죠.
또 하나, 이 서대문형무소 지나가는 이 영은문에는 바로 이렇게 영은문을 통해서, 또는 독립문을 통해서 올라가면 바로 궁이 나오는 것이죠. 바로 궁 뒤에 이 서대문형무소를 딱 지어놓음으로써 바로 궁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 형상입니다. 즉, 일본이 왕실을 호위하고 있는 듯한, 그래서 실제로 조선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위치이기도 합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여기 지금 현저동 일대에 보면 전부 산으로 이렇게 둘러싸여 있어요. 지금 현재도 뒤에 안산, 그다음에 인왕산, 그다음에 넘어가는 길에 무악재라고 하는 큰 고개가 있죠. 다시 말해서 산악형태로 되어있기 때문에 탈출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한 지리적인 입지, 정치적인 입지,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해서 이 현저동 101번지에 서대문형무소가 지어진 것이죠.

©모든 저작권은 내용전문가에게 있으며, 콘텐츠의 편집 및 전송권은 에듀니티가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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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그인후 작성 20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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